향수 in 일상

군대 말년 시절에 뭔가 쉰내나는 예비역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던 기억이 있다.

평생 연이 없던 남성잡지(에스콰이어)를 사보기 시작했던 것도 그 일환이며 제대한 후에도 2-3년 정도는 꾸준히 구독했던 것 같다. 이사하면서 다 버렸지만, 그 시절 에스콰이어에는 향후에 최고의 스타가 될 귀한 분들이 누추하게 찍은 사진들이 꽤나 들어있어서 버리기 전에 한번 더 들춰보면서 낄낄거린 것도 생각이 난다.

각설하고,
제대한 직후에 애독자 코너 같은 것에 응모를 한 번 했던 적이 있는데, 덜컥 향수가 당첨되고 말았다.
향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얼뜨기 복학생에게 'YOOP'이라는 첨보는 브랜드의 물건이 날아와서 사용법에 대한 공부를 강요한 것이다. 뭐 따지고보면 그냥 적당량을 적당한 곳에 뿌리는 것이 전부이니 별 문제는 없었지만, 혹시라도 주변에 향수 전문가가 나타나서 노트와 향에 대해 물어보고, 오드뚜왈렛인지 퍼퓸인지 물어볼 수 도 있으니 일단 뿌리기 전까지 기본 정보는 다시 한번 확인하여 숙지해야했다. 결국 그 한 해동안 나한테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두 사람이었다.

첫 번째는 당시 하던 PC통신에 당첨 사실을 알렸더니 듣보잡 브랜드의 향수라고 무시했던 누나(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두 번째는 차를 태워주다가 향수 너무 많이 뿌린거 아니냐고 냄새 독하다고 타박한 형(자기도 엄청 뿌리면서)

그래서 얻은 교훈은 '남들이 알만한 향을 내 욕심보다는 조금 뿌리자'

그 후에 내가 구입했던 향수들은 다음과 같다.

1. 스위스 아미 : 에스콰이어에서 흡연자에게 권하는 향이라고 해서 샀지만, 담배향이랑은 뭘 섞어도 별로다.
2. 버버리 위크앤드 포맨 : 그 시절에 제일 흔한 것중 하나라 사봤음.
3. 니코스 스컬프쳐 옴므 : 일본 가기 전까지 애용하던 향수. 제일 기억에 남는 향이다.
4. 불가리 뿌르옴므 익스트림 : 03년쯤부터 09년까지 꾸준히 사용한 최애 향수.(그땐 면세점에서 샀지만 이제는 비싸서 못삼)
5. 샤넬 알뤼르 옴므 : 친구의 누님이 여행선물로 사다주셨는데, 아껴쓰다 다 못쓰고 실종...
6. 디올 옴므 스포츠 : 결혼 전인가 결혼 후인가 집사람이 선물로 줬는데 절반 이상 남아있다(10년이면 유통기한이?)

과연 다음에 사게될 향수는 무엇일까?
(살 수나 있을까?)

서교동 어딘가에서 화려한 싱글 생활 중이던 08년 여름 날. (그리운 소품이 많이 보인다)




덧글

  • Mirabel 2021/06/13 21:46 # 답글

    그리운 소품이 많이 보인다고 하시는데 제 기준으로는 조촐하게 꾸며놓으신 방으로 보입니다만... 제 책상은 여기에 비교하면 혼돈 그 자체로군요... 역시 뭔가를 하려면 여백의 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향수... 향에 민감해서 제대로 써본 기억이 없는데 꽤 많이 사용해보신(?)것 같네요. @.@;;
  • Rogner 2021/06/14 01:56 #

    사진을 찍은 동생 녀석이(찍은지도 몰랐는데) 작년 쯤인가 뜬금없이 사진을 보내줘서, 그 난장판이던 자취생활의 추억들이 떠올랐어요. 뭐 돈은 쥐뿔도 못벌었지만 돈쓸 궁리는 엄청하던 시기여서 향수에도 관심이 많았더랬죠...
  • Mirabel 2021/06/14 12:31 #

    뜨끔합니다.. ;; 벌이는 시언찮으면서도 사고싶은거 사서 쓰는 요즘 제 모습...돈 쓸 궁리만 하는... ;; 난장판도 그렇고.. 메주 청소에 올인해야 그나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중이니.. (..);
  • 룬야 2021/06/30 03:53 # 답글

    저는 마님이 향수를 끔찍히도() 싫어하셔서 제대로 써본 기억이 없네요. 20대 초반에는 그래도 가끔 형이 쓰던 향수를 몰래 뿌리고 다니기도 했었는데...ㅠㅠ
  • Rogner 2021/07/06 15:37 #

    술취해서 대충 쓰러져 잠들었다가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손목에 남아 있는 잔향이 그렇게 좋았더랬죠. 이제는 불가능한 생활패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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